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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잉꼬 부부.'

 

글 제목치고는 좀 진부한 느낌을 주지요? 그래도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두 사람을 표현하는 말을 찾기 힘듭니다. 제게는 말이에요. 나이가 몇 살 아래여서 후배이지만 저는 그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세상을 잽싸게 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초스피드 시대에 여유롭게 사는 길을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인간의 진한 속뜻을 음미하며 어떤 삶이 옳은 삶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지혜를 그들로부터 배웁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직간접적 만남은 보다 넓은 세계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형, 서울 오면 저희 집에 들려 하룻밤 묵고 가세요."

 

이 말은 그들과 전화 통화할 때마다 반복해서 듣던 말입니다. 저는 형식적인 말과 내용이 담긴 말을 구분할 줄 아는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머리는 삶을 좀 피곤하게 할 때도 있지만 제가 실수하지 않고 처신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들이 하는 말은 진정성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언제 서울 가면 정말 일부러라도 그들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8월 24일)가 그 날입니다. 하루 작심하고 올라갔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루 쉼을 허락받았고,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지낼 것을 일러두고 출발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요량으로 차를 두고 기차를 타고 상경 길에 올랐습니다. 몇 가지 일을 처리했습니다. S 박사와 만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할 때는 한참 지났지만 우린 품격 갖춘 갈비 집을 찾아 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J가 운영하는 '동산치과'에 올라가니 오후 4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기쁨으로 임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J는 천생 의사입니다. 따뜻하면서도 의사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고, 사사로이 정으로 묶으면서도 절도에 흐트러짐이 없는, 그래서 그의 병원엔 언제나 남녀노소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아내는 그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나면 기분이 좋다고 말합니다.

 

손 대접하기를 즐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런 속성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님을 즐겨 대접했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강제로 집으로 데리고 와서 대접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깨놓고 현대인들은 손이 찾아오는 것을 그렇게 반기지 않습니다. 저부터도 부담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은 더합니다. 어제는 더위에 더해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였습니다.

 

그런데도 점심 식사를 하는 도중에 또 병원에서 치아 치료를 받는 중에 문자 메시지가 연이어 날아왔습니다.

 

"언제쯤 오세요."

"S 샘과 같이 오세요."

"저희 집은 **아파트 1**동 *02호예요."

 

사당역 3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앞에 높은 절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은 계단은 장애인인 저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입니다. 전철역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시설이 전반적으로 잘 되어 있는데 반해 사당역은 환승역임에도 또 이용객이 어느 곳에 뒤지지 않을 텐데,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새로 건설한 전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첫 지하철 1호선도 엘리베이터 시설이 많이 보완되었는데,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이 이렇게 불비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아파트에 도착하였습니다. 벨을 눌렀습니다. 차가움 속에서도 따스함이 교차하는 묘한 모나리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K가 우리 부부를 맞이했습니다. 촌사람이 서울 가서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촌티는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런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제가 짐짓 의연하려고 했습니다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찌뿌드드한 날씨는 불쾌지수를 높이기에 적당합니다.

 

선풍기가 좀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작은 부채를 손에 쥐어 주며 K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엔 선풍기 없어요. 이것으로 부치세요. 그리고 아까 부치기 좋은 두꺼운 사각 널빤지가 있었는데... 종이 쓰레기 나갈 때 달려 나갔나..."

 

저는 Y ․ K 부부가 소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느낌은 갖고 있었지만 생각을 이 정도로 완벽하게 실천하며 사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외면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을 살찌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친화적 삶을 말과 글로서가 아니라 오직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넓지 않은 아파트 내부를 일별해 보았습니다.

 

그 흔한 TV 수상기 한 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된 오디오 세트와 철 지난 구닥다리 컴퓨터만이 거실 한 쪽 귀퉁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모두 자연과 조화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양식 주거 문화인 아파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한옥에나 어울릴 만한 것들로 아파트 내부가 꾸며져 있습니다. 베란다에 보니 몇 개의 항아리까지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K는 저녁을 차리느라 분주합니다. 특별한 손님이라며 별식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소불고기 하나를 빼고는 모두 채소입니다. 호박부침개 감자부침개 가지나물 콩나물 등에다 버섯을 넣어 끓인 국까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집의 가장인 Y가 들어왔습니다. 1980년대 초의 미소년 때를 생각하고 그를 대합니다만 그도 50을 갓 넘긴 중년신사입니다. 약간 벗겨진 머리에서, 무게가 실린 말의 어투에서 삶의 연륜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원에 있는 학교까지 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의 집에는 자동차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 부부와 직장에 다니는 아들 그리고 대학생 딸, 이렇게 네 식구가 대중교통으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은 사글세를 주고 살더라도 좋은 승용차를 굴리는 세태 속에, 자연 보호를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면서도 이면에 자연 훼손을 물 먹 듯 하는 인사들이 설치는 때에 그들의 삶은 마치 고고한 외계인의 삶처럼 비칩니다.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K의 정성이 묻어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더 맛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이 식탁은 두 사람의 공동 작품입니다. K의 남편인 Y도 식탁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음식을 꺼내는 일 등 정성을 보탰으니까요. 그는 반찬을 꺼내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을 했습니다.

 

"형과 형수님이 와서 이것은 특별히 내놓는 것이니 많이 드세요. 우리 식구끼리 먹을 때는 이런 것은 나오지 않아요."

 

설거지는 가장인 Y의 몫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했습니다. 가사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남녀평등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이 평등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봅니다.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아내를 돕는 것은 마음이 아닌 행동임을 깨닫게 됩니다. Y ․ K 부부가 그것을 강력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급감할 것이며, 가정 해체의 빈도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하룻밤 묵어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또 일정이 틀어졌습니다. 두고 온 둘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라앉은 듯해 학교에 갔지만 점심시간을 전후해서 두드러기가 온 몸에 피어올라 조퇴해야 할 것 같다는 전화였습니다. 그저께 이 질환으로 김천의료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자 또 온 몸에 불꽃이 피어오르니 이번엔 대구의 큰 병원으로 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119 구급차까지 연락이 닿아 대구 경북대병원으로 이송을 했다고 합니다.

 

Y ․ K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단단히 작정하고 온 것이 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취소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Y 부부는 사당역 입구까지 우산을 씌어주었습니다.

 

"형수님, 얼마 안 됩니다. 이거 차비하세요."

 

K에게서도 차비라며 봉투를 받은 아내가 이중의 인사를 받는 것 같아 굳이 사양했지만 Y의 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집 사람이 드린 것은 그 사람 몫이구요. 이건 제가 자원해서 드리는 거예요."

 

농촌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부족한 선배의 사정을 헤아린 결과 나온 행동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란 말을 자주 되뇐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철역에서 헤어지는 우리 네 사람의 눈에는 예외 없이 작은 눈물방울들이 비쳤습니다. 그 일방의 눈물은 평생 잉꼬부부로 살아온 선한 이들의 합한 눈물이어서 더 돋보이는지 모를 일입니다. 19세기 말, 낭만에 젖은 한 컷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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