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누가 탕자 입니까?(2)
설교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말씀선포 : 김영진 담임목사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탕자였던 둘째 아들이 실패 했던 원인과 회복되는 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라는 늪에 빠져 실패의 삶을 살게된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지만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지혜를 가진 둘째아들의 모습속에서 우리의 희망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0절). 상할 대로 상한 아들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달려가 목을 끌어 안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종들도 다 즐거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첫째 아들이 집에 가까이 오자 음악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리고 큰 잔치가 벌어신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눠준 유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위하여 아버지가 베푼 잔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쨰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고생하는 자기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한번도 조그만 잔치하나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잔치 자리에도 나아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다시 큰아들을 들어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잔치를 같이 즐기자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평소에 섭섭했던 것까지 말하면서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때에 아버니는 "얘야,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그리고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 아니더냐? 그러나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 고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씁 가운데서 누가 탕자입니까? 성경은 큰 아들도 탕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린 실패한 탕자라고 한다면 큰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누리지 못하며 불평과 불만 가운데 살아가는 탕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질투의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3:16,요10:14~15) 그리고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요10:10). 그런데도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오히려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밖에서 서성이는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들만 탕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세리와 죄인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안에서도 첫째 아들과 같은 탕자가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들이여! 오늘 우리에게 동생이 돌아왔을때 아버지 처럼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맞이 할수 있는 믿음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미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아버지의 것 모두를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요8:32에"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믿음의 풍성함이 이 가을에 잃은 양 찾기 축제를 통하여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설교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말씀선포 : 김영진 담임목사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탕자였던 둘째 아들이 실패 했던 원인과 회복되는 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라는 늪에 빠져 실패의 삶을 살게된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지만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지혜를 가진 둘째아들의 모습속에서 우리의 희망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0절). 상할 대로 상한 아들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달려가 목을 끌어 안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종들도 다 즐거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첫째 아들이 집에 가까이 오자 음악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리고 큰 잔치가 벌어신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눠준 유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위하여 아버지가 베푼 잔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쨰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고생하는 자기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한번도 조그만 잔치하나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잔치 자리에도 나아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다시 큰아들을 들어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잔치를 같이 즐기자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평소에 섭섭했던 것까지 말하면서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때에 아버니는 "얘야,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그리고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 아니더냐? 그러나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 고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씁 가운데서 누가 탕자입니까? 성경은 큰 아들도 탕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린 실패한 탕자라고 한다면 큰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누리지 못하며 불평과 불만 가운데 살아가는 탕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질투의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3:16,요10:14~15) 그리고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요10:10). 그런데도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오히려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밖에서 서성이는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들만 탕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세리와 죄인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안에서도 첫째 아들과 같은 탕자가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들이여! 오늘 우리에게 동생이 돌아왔을때 아버지 처럼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맞이 할수 있는 믿음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미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아버지의 것 모두를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요8:32에"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믿음의 풍성함이 이 가을에 잃은 양 찾기 축제를 통하여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