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에서 세례식
가난한 자와 부한 자
가난이 문제로되, 부자가 되는 것이 반드시 그 해결책은 아니다.
물론 가난이 문제가 되는 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가진 것이
모자라 써야 할 때 못 쓰고, 떨어지기 전에 없는 것 걱정하고, 부질
없이 남을 부러워하고, 이런 것이 심해지면 남의 것을 탐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 공통점은 “있는 것에 만족을 못 느끼는” 그것이다.
이 점에서라면 부자도 나을 것이 없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만 갖기
원하는 부자가 과연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없어야 가난하며 얼마나 있어야 부자란 말인가?
부하고 가난한 것은 자신의 느낌이 아닌가?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해하고 남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은 분명히 부자다. 혼자는
셀 수 없어 회계사를 시켜서야 셀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도 만족을
못 느끼고 더 갖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한 신세다. 백만
장자가 부자의 호칭이 아닐 정도로 부자가 많아졌다. 우리나라에도
몇 십억을 가진 부자는 많다. 가난한 사람 역시 그 기준이 높아져서
자가용을 몰고 다니면서도 만족을 못 느끼는 세상이 되었다.
가난이 문제로되 그것이 죄는 아니다. 부자에게 문제가 있으되 재물이
재앙은 아니다.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22:2). 가난한 자도 하나님께서 내셨고 부자도
하나님께서 내셨다고 하지 않는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한 사람에게도
하나님 앞에 자기 책임이 있다. 적은 돈을 어떻게 쓰며, 많은 돈을
어떻게 쓰는가? 네 한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 하는가 ? 그리고
네 다섯 달란트는 ? (마 25: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