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봉사하자
더 참을 수 없어 코 끝을 씰룩거리면서 돼지는 소에게 덤벼들었다.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이 당신네들은 칭찬해주고 착한 사람에 비하면서,
우리는 멸시하고 꼭 욕심 많고 나쁜 사람에 비해서 말하는 거요?
하기야 당신네들이 우유와 버터를 대주니까 그럴테지,
그러나 우리도 그네들에게 햄과 베어컨을 대주고 있지 않소?”
소는 눈을 두어 번 껌벅이더니 대답했다.
“글쎄, 모르긴 하지만 아마 우리는 산몸으로 버터와 우유를
주인에게 내어 드리고 당신네들은 죽은 몸에서 햄과 베어컨을
드리기 때문이 아닌지.....”
이것은 짐승을 시켜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이다.
한번쯤은 되새겨 봐도 좋다.
소와 돼지는 다 같이 자기 몸으로 봉사했다.
그러나 받는 칭찬은 달랐다.
인생을 함부로 살다가 괴상한 병에 걸려 죽은 다음 대학병원에 팔려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사람은 세상에 햄과 베어컨을 준 것이다.
긁어 모아 가지고 있다가 죽으면 어차피 못쓸 것을
유언장에 적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 이것 역시 햄과 베어컨 이다.
그이상의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살아서 피땀을 흘려 남에게 봉사하고,
자기의 쓸 것을 쪼개서 주님 사업에 바치는 것은
우유와 버터를 바치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점을 유의해 보셨다(막12:44)
우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산다면
투자와 이익을 위해 살게 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바라본다면
존귀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