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여인

서인도 제도에 있는 푸에르토리코 공화국의 국립미술관에는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빠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루벤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작품을 본 방문객들은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연스러운 애정행각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표출한다.

포르노에 가까운 이런 싸구려 그림으로 어떻게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한단 말인가? 그것도 미술관의 입구에.

사람들은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노인의 부도덕함을 통렬히 비판한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의도로 이 불륜의 상황을 형상화했단 말인가?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서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였다.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인 것이다.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독재정권은 그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고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바로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노인은 감옥 안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다.

그리고 해산한 지 며칠 되지 않은 그의 딸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감옥을 찾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불어 있는 자신의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역사를 모르는 관람객들의 눈에는 단순한 포르노로 오해될 수도 있는

<노인과 여인>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눈에는 더 없이 지순하고 절절한

부녀간의 사랑,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그래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그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그림이 푸에르토리코의 독립 영웅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림은 고대 로마의 문학이나 예술에서 ‘자식된 도리’를 설명하면서

예로 드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처형될 날만을 기다리는 나이든 수감자는 처형의 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의 딸이 몰래 감방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먹인다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표현한 것으로, 이런 소재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