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경제가 힘들다고 한다.
상인들의 한결같은 푸념은 매상이 많이 줄었다는 것인데
줄었다는 말은 고객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채소 장수도, 생선 장수도, 음식점 주인도,
옷가게 점원도 손님이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손님이 많이 오면 어떻게 되나요?
그야 장사가 잘되는 거지요 ?
그럼 돈을 꽤나 번다는 얘기인데 그 돈은 어디에다 쓰나요?
그야 뭐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고 그런 거지요?
결국 불황은 모든 점포에 서로 고객이 되는 횟수가 줄어진다는 얘기이고
호황은 손님이 서로 오가며 팔아 준다는 얘기가 아닌가?
결국 그야말로 소비가 미덕인 상황이 호황이라면 차라리 불황으로
교통도 원활케 되고, 나들이도 자제하고, 먹고 노는 길도 약간씩만 줄여서
기능 절약으로 외화유출도 줄이고 사치낭비도 줄이고
근거절약도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외 망국이란 말이 난무하고 있다.
어떤 고3학생과의 대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학생은 과외를 어떻게 하고 있나?
과외는 하지 않고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왜(?) 않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 중에 과외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학생에게는 과외공부를 위해 자가용 승용차까지 동원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분수에 넘게 돈을 쓰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과외 선생님의 도움이 없어지면
그 과목성적은 뚝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니 대학에 가서도
담임교수 외에 또 다른 교수로 부터 과외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는 더 나아가 사회생활 할 때에도 자기 능력으로 이루어가는 생활 외에
과외생활 이란 것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힘닿는 데까지 자력으로 공부하여 자기의 정도에
알맞는 대학에 진학 하겠다는 대충 그런 요지의 대답이었다.
그때 나에게 그 학생은 “너 자신을 알라”는 옛 선인의 지혜를
터득 한 듯 마치 성인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남이 하니 덩달아서 장에 가는 식의 삶이 아니라
자기 삶의 지혜를 터득 한 것이 아닌가?
집에 불이 났을 때 아기 대신 베개를 안고
뛰는 것이 바로 공황이 아닐까?
어떤 공황의 바람이 불어와도
이런 강인한 정신력과 지혜를 터득한 학생들이 있는 한,
어떤 한파도 이겨내리라 확신하며 요동치는 기름 값의 차이에 따라서
차량이 몰려드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 세대와 오버랩 되면서
한참 생각이 젖어드는 순간 이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경제인, 교육자,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분별 있게 자기 분수에 걸맞게 사는 지혜가 필요 한 때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3:16)
이런때일수록 하박국의 감사를 생각하며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이런 어려운 환경들을 지금도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으며 믿음의 눈으로 보며 희망의 걸음을 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