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0 17:55

뉴욕마라톤을 마치고

조회 수 279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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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선씨, 한10km만 걷고 지하철 타고 와요" 2009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 참가를 위해 버스에서 내릴 때 푸르메재단 백 경학 이사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여덟 시간이라도 걸어서 완주를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그 전날, 마라톤의 고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뛰게 될 마라톤코스를 차로 돌아보면서 그 결연했던 의지가 점점 염려로 바뀌어가면서 '그래, 정 힘들면 지하철타야지.' 하면서 주머니에 카드를 넣었다.

           마라톤 당일 새벽부터 모여든 세계 각국의 마라톤 매니아들이 4만명이 운집하여 출발 전에 그 시간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은 그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는 별천지와 같은 아주 새로운 세상이었다. 스타트 시간이 다가오고 한그룹씩 스타트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괜히 운동화 끈을 자꾸 고쳐 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시에 속한 5개의 버로우(borough: 우리나라의 아주 광범위한 '구'에 해당함)를 모두 지나는 뉴욕시민 마라톤은 스태튼아일랜드의 끝자락에서 시작해 베라자노 내로우스라는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번에 나와 같은 이유로 푸르매재단의 재활병원 설립기금을 위해 뛰는 실력 있는 장애인 마라토너 네분과 도우미 두분과 함께 그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에 반도 못미쳐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다들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가기로 하고 먼저 그분들을 보내는데, 그 중 하나인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김황태 씨(나와 같은 시기에 사고를 당해 2개월동안 같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분)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를 생각해봐. 그때보다 힘들겠어? 끝까지 파이팅!'을 외치며 가셨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는 말자고, 한발자국 움직일 힘도 없을 때까지는 걷겠다고 다짐하면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들어서니 양 길가에는 온통 응원하는 시민들과 밴드의 연주로 그야말로 뉴욕은 축제였다. 흑인동네에서는 열정적인 응원을 받고, 멕시칸 계통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는 특유의 흥이 있는 응원을 받고, 아미쉬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아주 정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뉴욕이라는 곳이 정말 다양한 인종이 사는 곳임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었다.

         초반에는 세블럭 걷고, 세블럭은 가볍게 뛰기를 하면서 15km를 왔다. 그러고나니 왠지 하프 마라톤정도는 할수 있을 것 같았다. 21km하프지점을 통과하고 나니, 이제 곧 퀸즈보로 브릿지를 넘으면 맨하탄인데, 맨하탄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맨하탄의 응원도 보고싶었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무릎으로 또 고관절로 계속 올라오면서 이제는 걷는 것도 너무 힘들어 오히려 가볍게 뛰는 게 나을 만큼 아파왔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맨하탄에 들어오니 우리 교회가 있는 91가 까지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절뚝거리기 시작했고, 너무 힘이 들어 눈물이 왈칵 나오는 때도 있었다. 꼭 다리뼈가 골반에서 빠져나와버릴것 같이 아파왔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다섯 시간이 지날 때였다. 다리를 한발자국 옮길때 마다 '아...'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오랜만에 이를 악물게 될 만큼의 통증이었지만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만큼은 아니었기에 다음 발을 다시 내 딛었다. 그렇지만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내 뒤에 오던 마라토너 들은 점점 나를 앞질러 가고 추위가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 무모한 도전을 끝낼 시점이 가까워 왔다고 느꼈다. 그런데 잠깐씩 주저앉은 나에게 응원하는 사람들은 'Go Korea!'(한국 파이팅!)을 외쳐주었고, 지나가던 마라토너들은 정말 괜찮냐고 묻기도 하고, 지친 나에게 바나나를 반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신기하게 그게 너무 힘이 되어 다시 몸을 일으켜 발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1마일만 더 가보자 한 것이 이제 마지막 버로우인 브롱스를 앞두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브롱스 땅이라도 밟고 끝내자 하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하프포인트부터 들어온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내요!)라는 응원은 마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파하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끝났어~'하던 말과 같았다. 거짓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희망을 품으면서 그렇게 한발자국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 파크가 보였고 이제 7km만 더 걸으면 피니쉬 지점이었다.

         그때부터는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더욱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센프럴 팍 입구에서 어느 한국인이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피켓을 보게 되었다. 한 여자분이 한 시간 반 전에 너무 힘들게 걷는 나를 보고 나를 응원하러 센트럴 파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포기했더라면 오늘 그분은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셨을 텐데… 나를 응원해주러 길에서 서서 망부석처럼 나를 기다려준 그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이젠 더 힘을 내어서 피니쉬 지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지만 10km도 걸어본 적 없는 내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거리를 걸어와 이제 피니쉬 지점이 앞에 보이니 눈물이 솟구쳤다. 기다리고 계시던 백경학 이사님이 주신 태극기를 휘날리며 결승지점에 골인했다.

           2009년 11월 1일, 7시간 22분 동안의 나 자신과의 싸움. 해냈다! 불가능 해 보였지만 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픈 순간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기적은 일/어/났/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42.195km라는 멀고 먼 목표가 아닌, 하프지점만, 맨하탄까지만, 30km까지만… 1마일만 더 가보자! 한 것이 끝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한다. 오늘 난생처음 마라톤을 뛰면서 나는 그 비유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죽을 것 같은 고비들이 오지만, 포기하고 싶은 고비가 오지만, 실제 우리는 죽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멀고 먼 목표가 아닌, 이제 손에 잡힐 것 같은 목표를 계속 앞에 세우고 가다 보니 끝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눈물겨운 감격과 함께 '해냈다'라는 인생의 새 역사의 페이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르메재단이 화성시에 건립하는 민간 재활병원은 약 350억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000명의 후원으로 모아진 돈은 27억원. 지금 현실에 푸르메 재단이 꿈꾸는 병원은 오늘 아침의 나에게 42.195km처럼 허무맹랑한 꿈일지 모른다. 재활병원이 이렇게 부족한 현실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픈 150개 병상의 작은 병원은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그렇게 걷고 달려온 길처럼,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꿈은 생각하는 것처럼 불가능 해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나의 완주가 부디 푸르메 재단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또 이세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 앞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지선이의 주바라기
  • 헷세드 2009.11.10 18:03 Files첨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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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격렬한 운동과는 거리가 있었고, 대학재학중이던 2000년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40여차례 수술을 받은 뒤에는 피부가 위축되고 관절이 완전히 펴지지 않아 운동이 더 불편하다. 그래서 그의 도전은 그 자체로서 일반인의 '완주'를 능가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장애인 재활을 위한 푸르메병원 건립을 위한 소중한 기금으로 이어진다. 일반인 후원자들이 1미터당 1원을 기부, 1인당 4만2195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후원이 이뤄진다
    푸르메 재단 홈페이지: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은 장애인들의 재활의지와 도전정신을 북돋고, 비장애인들의 후원을 확산시켜 재활병원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로 4년째 세계 주요 마라톤대회에 장애인 선수단 출전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의 도전 무대는 참가자가 3만5000명을 넘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달리기 축제 인 제 40회 뉴욕마라톤이다.

    1년째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사는 곳이라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갈수 있다는게 뉴욕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부터 학업 짬짬이 1주에 사흘 정도 마라톤을 준비해왔다.

    이지선씨 옆에는 5명의 장애인 달림이들이 함께 한다. 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에스 오일의 후원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2001년 전기고압공사 도중 감전사고로 양팔이 절단된 지체장애 1급 김황태(32)씨는 비장애인 아마추어 마라토너들도 '꿈의 기록'으로 부르는 '서브3(3시간 이내 기록)'에 해당하는 2시간 57분대 기록을 갖고 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그는 이지선씨와는 사고 당시 이지선씨와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던 인연이 있다.

    5살때 열병을 앓은 후 청각을 잃게 된 청각장애 2급 이수완(40)씨도 직장생활도 하기 힘든 어려운 형편에서도 풀코스를 40번이나 도전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걸 보여주고 싶다'는게 그의 소망이다.

    시각장애 1급 신형성(48)씨는 31살때 망막색소변성 유전인자의 진행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을 따는 등 활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선천성 소아마비인 지체장애 1급 김용기(34.치과기공사)씨는 휠체어 마라톤에 도전한다. 세계 50위권에 드는 1시간46분 스피드로 뉴욕의 아스팔트를 질주하게 된다.

    푸르메 재단(www.purme.org)은 일반 시민과 기업들의 기부를 통해 경기 화성에 150병상 규모의 모델 재활병원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도가 부지를 제공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내년 5월 착공해 2년뒤 완공이라는 일정을 실행하기 위해 총 350억원이 든다. 지금까지 푸르메 재단이 모은 돈은 37억원. 정부지원 예정 금액을 감안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부인이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불운을 겪은뒤 재단설립과 운영을 맡아오고 있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전 옥토버훼스트 대표)는 "매년 30만명이 장애인이 되는데 국내 재활병원의 병상수는 6000개가 채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사고뒤 일찍 재활에 나서면 신체기능의 90%를 회복할수 있는 경우도 병상이 없어 시기를 놓치게 되면 회복률이 50%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백이사는 "재활시기를 놓치면 가족들의 고통도 커지고 사회복귀비용이 4배로 늘어난다"며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재활병원이 대대적으로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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