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체온의 종교
피나는 손가락을 엄마가 “호” 하고 불어 주면 아이들은 금방 울음을
멈춘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의 입김에서 뜨거운 체온이
전달되고 그 체온 속에 사랑이 전달되어 아픔을 이길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과 인격이 친구의 위로 한마디로
없어지지는 않지만 잡아주는 손과 만져주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우정의 체온은 상처 입은 인생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기독교는 체온의 종교다. 악수를 많이 해서 못 쓰게 된 손을 본 일이
있는가? 먼저 손 내밀면서 인사를 청하다가 목이라도 다친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어쩌면 그렇게도 손을 아끼고 목을 아끼는가?
바울 선생은 성도들에게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두 번이나 말하고 있다(롬 16:16 :고후 13:11). 이것을 우리들의
문화 식으로 말한다면 뜨겁게 악수함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말이다.
사랑의 체온이 전달될 만큼 참다운 교제를 하라는 말씀이리라.
성경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복된 이야기를 즐겨 읽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눅 10:30~37). 그의 선행 가운데서도,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그 사람에게 접근해서 몸에 손을 댔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피나고 멍들고 버려진 생면부지의 그 사람을 만졌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는가? 자기 짐승에다 싣기 위해 그 사람을 안았을
때를 생각해 보았는가? 가속된 심장의 고동 소리와 땀 냄새와 함께
풍기는 사마리아인의 그 체온에 환자는 정녕 눈을 떴을 것이다.
즉 참사랑이란 이타적이요. 무제한적이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
이다. 진정한 이웃은 희생을 마다 않고 타인의 필요에 의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친분을 이루는 이기적
아닌 이웃과의 참사랑을 체온으로 느끼게 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