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파스(태풍)의 교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오래된 떡갈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지난 태풍에 못 이겨서 넘어진 것이다.
대개 쓰러진 나무들은 참나무나 낙엽송 등인데,
다른 나무들 보다 가지도 무성하고, 잎도 청청한 나무들이다.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은 쓰러져 있는 나무들보다 가지도 성글고,
나뭇잎도 무성치 못한 관계로 평소에 지나칠 때는 당연히 쓰러진 나무보다
더 성장상태가 좋지 못한 나무들이라고 생각되었던 나무들이다.
쓰러진 나무들의 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무성하게 자란 가지나 나뭇잎에 비해 빈약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뿌리의 활착상태가 얕고, 그 뻗어있는 범위도 좁았다.
넘어져 있는 나무를 보니,
땅위로 나와 있는 줄기에 비하여 뿌리가 부실한 비대칭구조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보기에는 성장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던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뿌리가 넓게 퍼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한 가지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외화내빈의 진리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이 부실한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나 국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리라고 본다.
속은 텅 비어 있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여 과대 포장되어 살고 있는 위험성을 보았던 것이다.
결국, 나타나 보이는 외관을 지탱할 수 있는 저력이 없는
내용의 허망함을 나무들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전시행정이나 외모지상주의, 물량주의의 허구성을 거기서 보았던 것이다.
수입은 적은데, 씀씀이가 헤픈 가계나 국가경제,
믿음의 뿌리와 말씀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믿음이 좋은 흉내를 내는 성도나 교회의 흉내 내기와 어리석음,
회사의 형편에 비하여 인건비의 과다한 지출은
결국 파국으로 귀결된다는 교훈을 확인했던 것이다.
신앙이나 이 세상의 삶의 내용도 이와 같습니다.
시련과 문제가 닥치기 전에는 겉만 봐서는 그 내실을 알 수가 없다.
수입은 적은데 빚을 내서, 좋은 집을 사고, 값비싼 옷을 입으며,
고급 요리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말로가 어떻게 될까? 뻔하다.
망하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가 차관을 들여와서 정치를 잘하는 것처럼
몇 년간은 살아 갈수가 있겠지만,
그 결과는 IMF와 같은 국가의 부도사태가 결말이다.
우리의 신앙을 돌이켜 보자.
말씀은 없는데,
사탄의 공격과 어려운 난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승리의 신앙을 살기 위해서는 많이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건강하게 무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제나, 공격은 예비 되어 있는 것임을 명심할 때,
나무가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외형보다는 남의 눈에 뜨지 않는 내부의 충실함이
우선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는 무성한 잎보다,
튼실한 뿌리를 갖고 있는 나무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의 지형을 살펴보면 습한 땅에 썩은 잎이 쌓여
뿌리를 멀리 뻗을 필요가 없고 언제나 풍족함에 겨워 살다가
시련을 못 견디었지만,
바위틈이나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무들은
가지나 잎보다 뿌리가 더 멀리 더 깊이 양분을 찾아
고생스럽게 자라는 나무들은 절대로 끄떡없이 생존하는 모습이
우리네 인생살이나 믿음의 삶과 비슷하니
나는 어느 쪽 나무일까 ?
아무리 생각 해봐도
바위틈 메마른 땅에 심겨 진 나무 같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많을 것을 생각게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