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영어는 참 어렵습니다.
십여 년을 영어와 씨름하고 나서도 정작 영어를 쓰는 외국인과 말 몇 마디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외국에 나가보니 돈 쓰는 영어는 가능한데 돈 버는 영어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조기유학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기유학의 폐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국적불명의 정체성 없는 국제 미아로 판명되는 것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입니다.
영어는 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영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영어는 언외의 뜻이 들어 있는 영어입니다.
오래 전의 경험입니다.
책을 읽다 평범한 두 단어로 연결된 문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단어를 아무리 찾아도 특별한 뜻이 없는데 도무지 전체와 관련하여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뭘 가지고 그렇게 뜸을 들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퀴즈를 내겠습니다.
Seward's Folly가 무슨 뜻일까요?
아시겠습니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직역하면 슈워드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 첫글자나 고유명사가 아닌데 대문자를 사용하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신화 또는 성경의 사건 혹은 잘 알려진 역사이거나 영국이나 미국의 고유의 사건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Seward's Folly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는 미국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1867년 미국의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스는
미국 본토의 5분의 1 크기의 알라스카를 720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러시아 피토르 황제의 의뢰로 덴마크 탐험가가 그 땅을 발견한 후
그것이 러시아의 땅으로 인정된 것은 미국에 팔기 20년 전인 1847년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땅으로 인정된 지 불과 20년 만에
당시 흉작으로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밀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황제가 그 땅을 팔았던 것입니다.
720만 달러는 당시로서는 거의 천문학적인 대가였습니다.
그런 엄청난 금액을 지출하면서 얼음밖에 없는,
사람이 거의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을 구입한 것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존스 대통령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슈워드와만 의논 했을 뿐 의회의 승인 없이
그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알라스카를 매입하자 의회가 들고 일어난 것은 물론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매스콤까지 합세하여 존스 대통령과 슈어드 국무장관을 집중 질타하였습니다.
"그렇게 얼음이 많이 필요하냐?"는 비아냥과 함께 국고를 낭비했다는 질책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존스 대통령은 " 의회를 거치면 매스콤이 떠들고,
소문이 자자하면 러시아가 팔지 않거나 값을 올릴까 봐
국무장관과만 의논했다."는 해명과 함께 의회와 국민 앞에 백 배 사죄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땅은 얼음밖에 없는 불모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석유, 거대한 금광, 널려 있는 노천 탄광, 철 구리 아연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지하자원, 엄청난 삼림자원, 세계 3대 어장 가운데 하나이며
고급 어종이 잡히는 엄청난 수산자원, 그토록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던 최상질의 무공해 얼음까지
알라스카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이며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조사단을 파견한 후 이러한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자 의회는 말했습니다.
"의회에서 있었던 당신의 사과를 돌려드립니다.
알라스카는 얼음 창고가 아니라 보물 창고였습니다."
그 땅값을 계산해 보면 3,300 제곱미터(천 평)에 20센트였습니다.
Seward's Folly는 바로 그 국무장관 윌리엄 슈워드의 이름을 딴 것으로
당대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나 훗날 거시적 안목으로 재평가된다는 의미를 가지는
관용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Seward's Folly를 떠올린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현상 때문입니다.
너무도 일반화 된 교회의 타락과 관련되어 강력한 개혁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타락한 교회에 실망한 많은 교인들이 바른 교회를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옮기고 또 옮기고 안타깝게도 그러다 아예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다행히 믿을만한 교회를 찾아 정착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은 '강추' 교회가 되어 기독교 까페나 클럽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방황하는 교인들이 몰려들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방황하던 교인들은 그 교회에서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나쁘다고 말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기쁨과 세상의 칭송만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그것 이외의 함께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기 위해,
진주를 사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하는 기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의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의 일상에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되는
자기부인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내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위한 희생적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지배와 경쟁을 버리고 섬김의 길을 택함으로써 주어지게 마련인
십자가의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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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선지자들과 남은자들이 받았던 세상의 비아냥이며 판단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반드시 Seward's Folly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원전 650년 경 예레미야 시대에도 우리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장 사악한 유대의 왕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은 이스라엘을 참혹한 타락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던 웅대한 솔로몬 성전이 매춘부와 마술사들로 득실거렸습니다.
짐승과 괴물 모양으로 만들어진 우상들이 그 거룩한 곳을 더럽혔습니다.
정욕과 탐욕이 신격화되고, 살인이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므낫세는 전례가 없는 진창으로 백성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은 아몬 역시 아비의 뒤를 따라 악의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아몬은 살해되었고, 여덟살 된 아들 요시아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소년왕 요시아는 그러나 놀랍게도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의 개혁은 철저하고도 단호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감명 깊고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법사를 제거하고 매춘부를 쫓아내고,
이제는 깡패의 습격이나 살해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거리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이가 교회에 와서 새롭게 발견된 신명기의 명하는 대로 성전에다 제물을 바쳤습니다.
주님에 대한 예배가 인기 절정이요, 뜨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군중은 온통 도취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바로 그 순간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너희는 믿지 말라” (렘 7:4)
악을 제거한다고 사람들이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이 껍질만 건드렸다는 것을 예레미야가 알아차린 것입니다.
외적인 변화는 엄청났지만 내면의 변화는 경미한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너희는 믿지 말라”
예레미야의 이 외침이 우리 시대를 향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Seward's Folly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의 인정과 칭송을 더해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반복해서 말합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Seward's Folly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Seward's Folly에 대한 사과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온전히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 개혁의 선봉에 선 교회들이 성도들의 기쁨과 세상의 칭송과
그리고 무엇보다 선지자적 Seward's Folly가 있는 진정한 개혁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