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機會)에 민감(敏感)한 사람
죽은 가지에는 봄이 소용없다. 4월 중순(中旬) 쯤 이면 아무리 늑장부린 나무라도
새싹을 보이는데 그렇지 못한 나무는 죽은 것이다. 그것이 포도나무든지
가시나무든지 간(間)에 상관(相關)없이 그런 나무는 정원사(庭園師)가 잘라 불에 던진다.
봄은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를 가려 정원(庭園)을 정리(整理)하는 계절(季節)이다.
사람에게도 기회(機會)라는 봄이 꼭 찾아온다. 겨울이라는 불경기(不景氣)의 침체(沈滯)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는 다 같이 기(氣)를 못 펴다가도 반드시 오고야 마는 호경기
(好景氣)의 봄이 왔을 때에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판별(判別) 된다. 정신적,
(精神的) 정서적(情緖的) 차원(次元)과 영적(靈的)인 차원(次元)에서 살아 있지 못하고
생리적(生理的)으로 살아있는 몸만 가지고는 발전(發展)의 기회(機會)를 맞기 힘들다.
성공(成功)한 사람은 기회(機會)에 민감(敏感)한 사람이다.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요. 쫓아간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며 만든다고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말없이 예고(豫告) 없이 어느새 자신(自身) 앞에 와 있는 것이 기회(機會)인 것을 알라.
배를 타고 나가 부단(不斷)히 그물을 던지는 사람에게 고기 잡을 기회(機會)가 주어지듯이
자기현실(自己現實)에서 부단(不斷)히 성실(誠實)하게 노력(努力)하는 사람에게만
성공(成功)의 기회(機會)가 잡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장 타당성(妥當性)이 없어 보이는데서 가장 큰 기회(機會)를 찾는 수도 있다.
구약(舊約)의 인물(人物) 요셉을 생각 하라.
그는 그의 생(生)의 가장 캄캄했던 옥(獄)살이 에서 가장 큰 기회(機會)를 찾았다. 거기서
죄수(罪囚) 하나를 도와준 것이 이집트의 국무총리(國務總理)가 되는 機會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깨어 있다면 기회(機會)는 항상(恒常) 우리 앞에 와 있을 것이다.(막 13 :33 )
글 색상과 크기도 잘 하셨구요.
제가 서예관련 행사 때문에 바빴던 관계로 덧글도 이제야 올리게 되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