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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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복을 달라는 소유지향적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로 인해 많은 것을 응답받고 부를 소유할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존재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은 예수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구원의 존재의 변화가 없이 자본주의적 소유만 증가할 경우
우리는 그 소유로 인해 맘몬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존재의 변화 없이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환경만 좋아질 경우
우리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반 복음적인 적그리스도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으로 가득 찬 부동산 투기와 재산 증식 등의
사회적 수단과 목적에 집중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구약의 율법적이고 소유의 복을 나타내는
성경구절에 유독 집착을 합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의 복의 개념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구원 받은 존재의 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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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돈에 정치력이 나오는 것처럼
돈거래가 되면 일종의 교회 정치 구도가 성립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도 돈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모든 게 좌우되고 있는게 자본주의 교회의 죄악적 실상입니다.
이런 자본주의 물욕적 원리를 따르고 있는 맘몬적 교회가 더 이상 교회로 위장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소유에 대한 질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
소유의 삶에서 극적으로 존재의 변화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아마도 충실하게 세금을 거두어서 할당된 세금을 로마 정부에 상납하고
그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습니다.
로마 식민지사회에서 삭개오는 로마 사람들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의 동족들을 향하여 세금을 착취하여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이고 왕따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소유와 세속적 성공의 욕구를 달성하였지만 늘 존재에 대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자마자 존재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대접하고
지금까지 잘못한 것을 예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소유의 절반을 구제하고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는 소유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존재의 삶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위임과 임직을 앞두고)
이러한 질적이고 존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