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한 희생
참으로 위대한 스승님이셨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보다 잘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의 그 심정은 요한복음 14 : 12절에 잘 표현 되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불치의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귀신을 쫓아 내시던 일들을 제자들도 할 수 있고 또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시던 예수님은 오늘날 수많은 제자들의 위대한 역사를
통해 높으신 스승님으로 각광을 받고 계신다. 참으로 위대한 선배는
후배 잘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은 자기의 후배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진정한 고백을
했다.(요3:30). 예수님의 대변자와 방탄 벽 역할을 하다가 옥중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예수님의 명성에 따라 자연히 위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생
잘된 것을 시기하던 가인이나, 후배 다윗을 시기하던 사울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던가? 가인은 방랑객이 되고 사울은 비참하게 죽지 않았던가?
참으로 위대한 친구는 자기보다 친구를 위대하게 만들어 준다. 다윗의
뒤에서는 친구 요나단이 희생되고, 바울의 성공 뒷전에는 친구 바나바의
후덕한 주선이 있었다. 우리의 출세의 뒤에는 영원하신 친구 예수님이
계신다. 장로인 나는 우리 성도들이, 후배 장로들이 나보다 천 배나 잘
되기를 바란다. 위대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교우들의 출세의 밑바닥과
뒷전에 있기를 원한다. 진흙에 묻힌 연근처럼, 거대한 유람선이나 화물선
후미의 스쿠류(프로펠러)처럼(요15 :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