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정상에서
예수님의 보혈
흰 눈은 가시덤불을 덮고 자갈밭, 진흙 땅을 덮어준다. 보기흉한
모든 것을 조용히 덮어 좋게만 보이게 해주는 포근한 그 눈을 우리는
정녕 보았을 것이다. 누가 그 속을 들추어낼 생각을 하겠는가? 그저
그 눈부신 광채에 감탄할 뿐이다.
벽로(壁爐) 앞에 놓인 화초 세 포기, 눈같이 희지도 못하면서 검고
허전한 불꺼진 벽로의 그 모습을 덮어주려고, 쫓겨온 아들을 감추려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처럼 잎사귀를 그토록 펼치고 있구나. 네가 나무냐?
풀이냐? 솔로몬은 알리라. 그러나 그을린 벽로의 이마와 그 안에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네가 가려줄 줄은 솔로몬도 미처 몰랐으리라.
우리들의 연약함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된다.
찬송을 받으실 그 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시지를 않는다.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는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신다.
우리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가 친히 우리의 친구이심을 믿을 수 있는
더 큰 근거를 우리는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이 크면 클수록 난관이
크면 클수록, 주님의 도우심은 더 가까이 나타나신다.
때때로 완전히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든 것처럼 보일 때도 그렇게
되지를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신앙, 더 많은 인내와 실천이 그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우리들의 마음을 그 앞에
쏟아 놓는 일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자기가 원하시는 시간에 자기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눈은 녹을 때가 있다. 그러면 가시나무가 다시 보인다. 화분의 화초를
치워버리면 벽로의 그 모습도 다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 죄를 덮어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닦아주고 씻어준다. 가시나무
처럼 사나운 사람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는 포도나무처럼 변하고 여우와
이리 같은 사람도 양같이 순해진다. 가리워진 허물은 불안하다. 허물은
씻어낸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는 것이다(잠 17:19, 요일 1:7).